얄루
Yalo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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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오라마, 호모폴리넬라 더 랩 the Diorama, Homopaulinella the Lab>, 2022, 맞춤 윈도우 데칼, 가변크기

< 짜라투스트라여 울지말아요, 호모폴리넬라 더 랩 Don’t You Cry, Zarathustra, Homopaulinella the Lab>, 2021, 싱글채널비디오, 4분, 사운드

<짜라투스트라의 석양, Sunset of Zarathustra>, 2021, 단편소설 by 김훈예 for 호모폴리넬라 더 랩

호모 폴리넬라: 해조류 인간으로 새로운 지구 윤리를 상상하기_김서영



 벌써 2년째 전 세계를 마비시키는 바이러스. 예상치도 못한 순간 창궐한 COVID-19는 인간이 어려움 앞에서 얼마나 무자비해질 수 있는지를 가감 없이 보여주었다. 우리는 근거 없는 인종차별, 이에 따른 폭행, 버려진 마스크에 다리가 잘린 작은 새들을 목격했다.

 얄루의 호모 폴리넬라 프로젝트는 우리가 겪은 이 팬데믹의 경험에서부터 본격화되었다. 이번 전시에서는 사이버펑크(cyberpunk)적 요소를 기반으로 비디오 맵핑이나 미디어 파사드 등 다양한 미디어 작업을 선보이는 얄루의 작업 중 2020년부터 꾸준히 이어져 온 호모 폴리넬라 프로젝트의 이야기를 펼쳐낸다. 얄루는 이번 전시에서 벽과 창문 이곳저곳을 부유하는 민달팽이와 해조류의 형상을 호모 폴리넬라 생태계를 한눈에 담을 수 있는 일종의 디오라마(diorama)로 정의한다.


시간적 배경은 지금으로부터 머지않은 미래로, 호모 사피엔스는 동물권과 환경 보호에 대한 인식의 팽배로 점차 육류 소비를 줄인다. 곧 육류 및 유제품의 대부분은 실험실에서 만들어 낸 식품인 ‘라벤(LABEN; Laboratory Artificial Bio Engineered Nutriment, 실험실 바이오 엔진 영양품)’으로 대체된다. 이로써 호모 사피엔스는 잔인하게 다른 생명체를 살상할 필요가 없어졌으며, 대량 농장과 장거리 유통의 필요성이 감소하여 기후 문제의 진행도 늦출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2199년, ‘라벤-에이즈’라는 자가 면역 질병이 지구를 덮친다. 이 질병은 실험실의 생명 엔지니어링으로 만들어진 식품에서부터 생겨난 것으로, 치사율이 거의 100%에 달한다. 이 위기를 해결하기 위해 인간은 두 가지의 선택지에 다다른다. 다시 원시적인 방법으로 돌아가 도축된 가축의 고기를 섭취하며 사는 것. 혹은 라벤도 가축도 아닌 곳에서 에너지를 얻을 수 있는 새로운 종족을 위한 신체를 디자인하는 것. 그들에게 동물의 살상은 이미 너무나 잔인한 일로 여겨졌기 때문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후자를 옹호했다. 곧 인간은 스스로 광합성이 가능하다고 알려진 에메랄드빛의 해양성 푸른 민달팽이를 연구하기 시작한다.

연구를 거듭하던 2220년 10월, 만 3세의 릴리안 쓰촨이라는 여자 아기가 수중 생활을 하며 스스로 필요한 에너지를 광합성으로 생성할 수 있음을 처음으로 증명하였다. 스스로 광합성이 가능하여 외부 영양 공급이 불필요한 이 포유동물을 기존의 호모 사피엔스라고 부르는 것은 불가능했으므로, 새롭게 진화한 이 인류는 자신들에게 ‘호모 폴리넬라(Homo Paulinella)’라는 이름을 부여하였다.1)


 영국의 미래학자이자 인체 냉동 보존 사업가 막스 모어(Max More)는 트랜스휴머니즘(Transhumanism)의 개념을 제시한다. 이것은 “생명-향상 원리에 의해 인도되는 과학·기술을 수단으로 현재의 인간 형태와 한계들을 넘어서 인간의 진화를 계속 이어가고 가속화 하고자 하는 생명의 철학”이다. 또한 “응용된 이성을 통해 인간의 지적, 물리적, 심리적 능력들을 향상시키고, 노화를 억제하기 위해 기술공학을 폭넓게 사용함으로써 인간 조건을 향상시킬 수 있다는 가능성을 긍정하는 지적이고 문화적인 운동”이다.2) 그와 같은 트랜스휴머니스트들에게 현재의 인간은 그 자체로 완전한 것이 아니다. 현재의 인간은 거대한 진화론 안에서 단지 하나의 작은 단계에 불과할 뿐이다. 우리는 끊임없이 인간의 생물학적, 유전적 한계를 극복하기 위하여 기술공학을 적용해야 하며, 인간의 본성을 더욱 바람직하고 가치 있는 방향으로 고쳐나갈 수 있다고 믿는 것이 트랜스휴머니스트들의 주장이다.3) 이들은 근본적으로 인간의 이성, 과학을 신뢰하며 이를 바탕으로 인간이 더욱 진보할 수 있다고 본다는 점에서 기존의 휴머니즘적 시선을 유지한다.

 이에 반해 얄루의 작업은 인간중심주의적이고 휴머니즘적인 시각을 탈피하여 한 걸음 더 나아간다. 호모 폴리넬라는 포스트휴먼의 모델로서 제시된다. 인간 신체가 처한 상황―호모 사피엔스로부터 호모 폴리넬라로의 진화―은 신체에 대한 기존의 정의 자체를 의문시하며 고전적인 휴머니즘의 가정을 파기한다. 얄루는 고전적 ‘인간’의 범주에 들어가지 못하던 타자를 포스트휴먼의 몸 안으로 끌어들인다. 새로운 신체는 포스트휴먼으로의 전회가 일어나는 바로 그곳이 된다. 즉, 포스트휴먼으로의 전회가 벌어지는 장소인 신체는 주변의 인공물과 결합하거나 해체되며 각 요소들과의 상호 작용을 통해 끊임없이 변화한다.

 포스트휴먼의 시대는 이미 본격화되었다. 과학의 비약적 발전은 생태계 파괴, 경제 양극화를 낳았으며, 복잡한 국제 관계는 환경 문제 처리나 국제 난민에 대한 이슈를 양산한다. 로지 브라이도티(Rosi Braidotti)는 이러한 파국을 타개하는 실마리로 포스트휴먼을 주목한다. 이러한 새로운 인간의 범주를 생산함으로써 우리는 기존의 휴머니즘이 제시하는 고전적 도덕과는 다른 새로운 윤리를 만들어낼 수 있다. 고전적 휴머니즘에서 ‘인간’의 범주에 들어오지 못했던 여성, 동물, 식물, 세포와 같은 ‘타자’에 대한 성찰은 기존의 인간중심주의적 시각을 해체한다. 브라이도티는 기존 인류세의 생명 정치가 ‘인간’에 포함되지 못하는 ‘타자’의 생식력을 착취하는 통치에 기반하는 것을 자각하며, 타자로 여겨지던 이들과의 새로운 집단을 형성함으로써 긍정적 연대의 가능성을 모색한다.4)

 포스트휴먼으로의 전회는 다가올 미래에 인류가 가져야 할 새로운 윤리를 만들어 줄 가능성을 엿보게 한다. 얄루가 제안하는 포스트휴먼―호모 폴리넬라―의 모습은 기존의 식민주의적이고 인간중심적이던 인류세의 시각을 상쾌하게 전환시킨다. 새로운 인간, 이것이 다가올 우리 지구 공동체의 새로운 윤리를 만들어 줄 희망의 실타래가 될지 모른다!

 




1) 줄거리는 『HOMO PAULINELLA THE LAB: Don’t you cry, dear Zarathustra(produced by Yaloo&Hounyeh Kim)』(vol.1)에서 간추린 것 2) More (2013), p. 3. 3) More (2013), p. 4.
4) 김환석 외 21인, 『21세기 사상의 최전선: 전 지구적 공존을 위한 사유의 대전환』 (이성과감성, 2020), pp. 118-122.


2200년대의 어느 날과 2022년의 어느 날이 만나는 지점에서._문채원



 당신은 호모폴리넬라(Homo Paulinella)다. 당신은 당신들 인류의 자유의지로, 해조류와의 결합을 통해 새로운 종으로 변화한 인류다. 기존의 삶을 영위할 수 있을 만큼 혹은 그 이상의 지적 능력을 지녔으며, 신체의 균형도 흐트러짐 없다. 스스로 광합성을 하여 활동에 필요한 에너지를 생산하기 때문에 음식 섭취를 하지 않아도 삶에 지장이 없다. 호흡할 필요도 없다.

 2200년대의 어느날. 자연사 박물관에 들어선 당신, 2020년대를 살던 과거 인류의 생활상을 재현한 디오라마(Diorama)를 발견한다. 지금의 도시 모습과 다른 점은, 도시 곳곳에 자라난 해조류들을 단 하나도 볼 수 없다는 것임을 당신은 인식한다. 떠다니는 부유물들도 없다. 한 마디로 깔끔하다.

 당신은 질문 한 가지를 떠올리게 된다. 과연 이렇게 '깔끔한' 도시에 살던 2022년의 인류는, 현생 인류인 '호모폴리넬라를 상상할 수 있었을까?

 2022년의 관점에서 과연 호모폴리넬라는 '인간'이었을까? 2022년의 인류인 호모사피엔스사피엔스들은 호모폴리넬라의 존재를 어떤 형태로, 또 어떤 방식으로 유추했을까?



...




 2022년 1월의 전시 《바디 다운로드 매뉴얼》에서 작가 얄루Yaloo는 2200년대의 호모폴리넬라가 생활하는 도시를 배경으로 디오라마를 보여준다. 큰 창을 통해 마주하게 되는 호모폴리넬라 도시의 수중 전경은, 관람자로 하여금 그것을 현재 상황의 한 장면으로 느끼게 한다. 지금 서울의 풍경 위로 녹아드는 전경을 뒤로, 호모폴리넬라의 탄생 비화를 알려주는 소설과 영상 그리고 사운드는 2200년대의 도시 경관을 복합적으로 경험할 수 있게 한다.

 전시장은 이렇게 하나의 호모 폴리넬라 생태계를 이룬다. 전시장에서 펼쳐 보여지는 호모 폴리넬라의 서사는 신인류의 등장이라는 사건을 통해 미래에 대한 구체적인 상상과 현재의 인간 신체에 관한 질문을 연결짓는다. 호모 폴리넬라의 탄생은 2199년 ‘라벤-에이즈(Laben-Auto Immune Disease Syndrome)’라는 신종 질병에서 기인한다. 이 질병은 인간의 식생활을 이유로 발병했다. 전세계적으로 생명 개체를 식품으로 소비하는 것이 전면 금지됨에 따라 그로부터 얻을 수 있었던 영양소를 ‘라벤’이라는 실험실 바이오 엔진 영양소로 대체하였고, 그에 따른 무수한 부작용이 2200년 무렵에서야 발생한 것이다. 즉 전시에서는 우리 인간의 존재 여부를 파악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근거인 몸이 필요에 의해 변화함에 따라 그 몸을 둘러싼 무수한 상황도 달라질 수밖에 없는 현상을 포착한다.

 호모폴리넬라는 다른 지구 구성 종과의 결합을 통해 새로운 종으로 진화했다. 이 지구에서 삶을지속하기 위해, 살아남기 위해 다른 종과 함께 살기를 택했다. 게다가 그러한 진화의 이유는, 환경 문제 그리고 그것과 연결되는 식생활 루틴의 변화였다. 기존의 인류가 부과한 과업같은 것, 즉 지금의 인간이 지속 가능한 삶을 위해 고민하고 있는 부분인 것이다. 이러한 이유로 호모폴리넬라의 신체는 단지 인간의 몸만이 아니라 지구의 역사성을 내포하고 있는 복합적인 신체로 인식될 수 있다. 그래서 호모폴리넬라라는 개체의 몸은 단순히 몸이 아니다. '다양한 물질의 창발적 효과'가 일어나는 공간 속/관계 속 '신체'가 된다. 호모 폴리넬라는 인간에서 진화한 생물체이지만, 과연 그것이 인간인가라는 질문을 야기한다. ‘갖고 태어난’ 것들에 대한 인위적 조작으로, (2022년의 기준에서) 인간으로서는 불가능하다고 여겼던 능력을 갖추었으며, 그에 따라 흔히 인간이라 인식하던 외양과도 큰 차이를 보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변화는 하나의 거대한 시대 흐름으로 국가의 주도 하에 진행되었다. 불가피하게 자발적인 세대 교체라고 볼 수도 있다. 그러한 점에서도 호모폴리넬라의 몸은 기관으로서의 신체가 된다. 안과 바깥의 경계로써의 신체가 된다. 그리고 위에서 말했던 지구의 여러 담론들이 축적된 신체가 된다.

 호모 폴리넬라의 몸은, 도시의 풍경으로 인해 상상될 수 있다. 도시는 개체들이 구성한 또 다른 하나의 유기체라고도 볼 수 있으나, 그 속에 거주하는 자들이 있어야만 도시의 존재가 성립될 수 있기 때문이다. 호모 폴리넬라의 상상된 몸은, 전시장의 창문과 영상, 그리고 떠다니는 소리들이 맞닿는 지점이다. 비어있는 것처럼 보이는 도시는 그곳에 존재하는, 혹은 존재했거나 앞으로 존재할 수많은 신체들을 상상하게 한다. 세상을 구성하는 여러 존재자들이 얽혀있는 호모 폴리넬라의 함축된 신체는, 그 상상 속을 유영하며 세상과 관계맺는다. 

 자, 이제 2022년을 살고 있는 호모 사피엔스 사피엔스의 시선에서 2200년을 들여다보자.




<21세기 사상의 최전선>, 2020. 김환석
<호모폴리넬라 더 랩: 짜라투스트라여, 슬퍼하지 말아요>, 2020. 얄루, 김훈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