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연
KIM SUNG YEON







Hugging Session, 퍼포먼스 비디오, 7분5초, 2020

Second Skin, 디지털 프린트, 3750X2500mm, 2020

Broken pieces of body (몸의 파편), 유리와 밀가루 혼합매체, 가변설치, 2020

신체에서 시작하기_장유진




 작가 김성연의 작업은 신체에 대한 고민으로 점철된다. 평면의 프린팅 작업에서부터 전시장 구석으로 시선을 옮기게 하는 설치 작업, 몸을 적극적으로 이용하는 퍼포먼스까지, 다양한 매체를 활용하며 그가 지속적으로 탐구하고자 하는 바는 ‘신체’라는 용어로 명명되는 것의 본질과 그 가능성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너무나 많은 이미지가 제시되어 알레고리와의 관계성이 흩어지는 오늘날, 작가는 자신이 포착한 신체 이미지를 통해 그것을 새롭게 정의해보고자 한다.

 우리는 물건들의 위치에 대해서는 하나가 다른 것의 ‘옆’이나 ‘위’에 놓여있다고 말하지만 신체에 대해서는 그러한 표현을 사용하지 않는데, 메를로 퐁티(Maurice Merleau-Ponty, 1908~1961)는 신체의 각 부분은 분리되는 것이 아니라 서로에게 둘러싸였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그렇기에 “신체의 공간성은 외부 대상의 공간성 또는 ‘공간 감각’의 공간성처럼 위치의 공간성이 아니라 상황의 공간성이다.”1) 과학적으로 논할 수 있는 정위된 공간은, 그 공간에서 신체가 경험하는 상황에 의해서만 구별될 수 있다.2) 즉, 신체가 있어야 비로소 나에 대한 ‘공간’이라는 것이 존재하게 되는 것이다.

 두 작업 <Second Skin>과 <부서진 몸의 조각>은 보이지 않는 신체의 부위인 내부의 장기를 꺼내어 보여준다. 모든 경험에서 분리될 수 없는 지극히 익숙한 신체에는, 역설적이게도 그것의 소유자는 결코 확인할 수 없는 장기가 포함된다. 두 작업은 생경한 장기의 모습을 드러내며 보유하고 있음에도 의식하지 못하고 행위하고 있음에도 자각하지 못했던 신체에 대해 새롭게 주목하게 만든다. 이들 작업은 보이는 방식에서도 관객의 움직임을 요구하여 신체에 대한 자각을 끊임없이 이끌어낸다. 그러한 관람 방식은, 퐁티의 신체와 같이 상황의 공간성을 포함하게 되고 그로써 공간을 존재하게 한다. 공간을 체험하는 개인은 바로 그 자신의 행위를 통해 이미지화된 신체를 살피는 이중적인 신체성의 경험을 통해 자신을 구성하는 물질적인 것에 대해 환기한다. 나에게서 분리되어 이미지로 존재하는 신체를 마주하거나, 나의 신체를 작동시키는 체험(전시장을 돌아다니는 행위)을 통해 그것의 정의와 기능에 대해 사고할 수 있게 된다. 따라서 흔히 정신과 대립하는 것으로서 이야기되는 신체가, 작가 김성연의 작업에서는 정신적인 사유를 가능하게 하는 조건으로서 등장한다.

 앞선 작업은 일상적으로 볼 수는 없지만 생물학적으로 신체를 구성하는 것을 시각화하여 신체에 다시금 주목하고 그것의 가능성에 대해 살펴봤다면, <Hugging Session>과 <웨어러블 오브제>는 나의 신체에서 타인의 신체로 나아가며 신체의 범주를 정의하는 것을 시도한다. <Hugging Session>에서와 같은 밀접한 접촉과 분리, 그것에서 유발되는 특정한 심리 상태는 나에게 분명하게 자각되는 것이기에 그것으로 타인이 존재한다고 말할 것이다. 그러나 분명한 것처럼 생각되는 물리적이고 심리적인 상호작용 역시 타인에 대한 ‘나의 의식 또는 경험’으로 서술된 것이다. 자크 데리다(Jacques Derrida, 1930~2004)는 타인에 대한 이러한 자각은 나에 의해 구성되는 것이라는 점에서 선험적 폭력이라고 표현했다.3) 따라서 퐁티는 대안적으로 타자를 경험하기 위해 나 아닌 존재와의 만남이 근본적으로 지닌 가역성에 주목한다.4) 이러한 관점에서 “나의 <신체-주체>가 타인의 예고장”5) 이 되기 때문에, <웨어러블 오브제>에서 두 인물의 옷이 연결되어 신체적인 접촉과 범주의 확장을 암시했던 것과 같은 맥락에서, 나의 신체는 타인의 타자성을 보증할 수 있는 것으로서 의미상으로 확장된다. 신체는 상호의 존재를 증거하는 협동적인 관계를 이루면서도, 한편으로는 서로의 물리적인 경계를 침범하고 그로써 심리적인 불편함까지 야기하기도 한다.

 이처럼 작가 김성연은 비가시적이었던 신체의 일부를 꺼내어 존재를 구성하는 그것을 직면하게 하는 개인적인 자각을 시작으로, 접촉의 시발점이 되는 피부와 그 감각에 대한 고민을 유도하는 작업으로써 타자와의 관계로 신체의 개입을 확장한다. 그의 신체는 행위의 주체 혹은 접촉의 경계라는 신체의 단선적인 해석으로부터 발전해가며 다층적으로 정의되기를 끊임없이 요구한다.



1) 메를로-퐁티, 『지각의 현상학』, 류의근 역 (서울: 문학과 지성사, 2002), 169쪽.
2) 류의근, 「메를로 퐁티에 있어서 신체와 인간」, 『철학』, 50권. (1997), 264쪽.
3) 류의근, 「살과 타자의 만남」, 『철학연구』, 105권. (2008), 207쪽.
4) 시각적인 지각에 대해 말하자면, 나의 시각장에 들어오는 대상이 있다면, 역으로 나 또한 그것에게 ‘보이게 된다’. 신체적인 접촉에 있어서는 내가 타인의 손을 붙잡는다면 나 역시 그의 손에 의해 ‘붙잡힌다.’ 즉 지각하는 것과 지각되는 것의 관계는 언제든지 역전될 수 있다.
5) 류의근 (2008), 209쪽




검은 바다 (Black Sea), 퍼포먼스 비디오, 9분50초, 2021

꿈의 연결과 분할, 몸의 분할과 연결_유가영




 김성연은 여러 이들의 꿈을 조합하여1) 내러티브를 생성한다. 이는 몸의 이미지가 존속하는 과정의 내러티브이자, ‘분할과 연결’을 지속하는 몸에 대한 인지법이다.

 김성연은 인간의 신체 기관, 혹은 그것들이 만들어내는 일련의 행위를 식물적인 몸과 동물적인 몸이라는 두 부류로 구분한다. 그에게 식물적인 몸은 신체가 생체 시스템을 자율적으로 조절하는 것이며, 동물적인 몸은 우리의 의지가 반영된 것이다.


 동물적인 몸, 식물적인 몸 그리고 그것을 주동하는 자아가 갖는 관계는 다층적이다. 우리의 의지와 가장 맞닿아 있는 손(동물적인 몸)은 소유자의 의지에 따라 움직인다. 손으로 존재를 어루어만질 때, 우리는 대상을 지각하고 인정한다. 대상과 가장 먼저 접촉되는 것은 작은 자극에도 균열과 반응을 일으키는, 표피(식물적인 몸)와 같은 미시적인 기관이다. 이 기관은 지각을 주관하지만 존재한다는 인식조차 없이 자생적인 일생을 보내기도 한다. 동물적인 몸과 식물적인 몸의 ‘분할과 연결’은 자아를 꽁꽁 싸맨 채 지배하거나, 자아에 의해 지배받는다.



 김성연은 이러한 관계를 전제하여 교차, 병치, 결합의 방식으로 ‘몸의 이미지’를 구성한다. 이때 ‘검은 바다’는 그의 이미지가 탄생하는 지점이자 영상의 자막으로써 제공되는 ‘꿈의 텍스트’에서 1인칭 화자의 내러티브가 시작되는 공간이다. (혹은 임의로 탄생한 화자가 다시 소멸하는 공간으로써 기능한다.)

 내러티브가 진행되는 방식은 다소 역설적인데, 텍스트는 그간 자연세계에 상징체계를 부여하기 위한 역할을 수행했다. 그러나 그의 작업에서 텍스트로 전환된 무의식은 신체 이미지가 가진 일종의 상징체계를 해체하는 역전의 방식을 취한다. 디디에 앙지외에 따르면, “꿈은 외부 자극과 내부 욕동의 압력의 차이를 없앤 상태에서 그 둘을 동일한 영역에 둔다.”2) 꿈이 취하는 성질, 즉 ‘외부자극’과 ‘내부욕동’이 갖는 간극을 극복하는 것은 그가 제시하는 이미지에 내러티브의 형식으로 투사되며 본래 가지던 맥락으로부터 분리한다.

 현미경으로 확대된 작은 털과 표피. 그것은 기하학적 형태로 압축된 듯 나타난다. 우리와 끈끈하게 결합한 것들에 대한 마주침은 낯설다. 화면을 채우는 검은 배경은 사그라들고, 이후 거시적 단계의 신체가 나타난다. 자유롭게 움직이는 손과 전신이 일렁이며 김성연은 몸의 이미지, 즉 극소 부위와 외연의 움직임이 갖는 모종의 관계를 탐색한다. 꿈과 같은 무의식 단계에 진입하여 다소 분리된 것처럼 보이는 이미지들을 교차하거나 결합한다.

 무의식에서 획득되는 내러티브는 무작위로 추출해낸 영화 장면을 소위 얼기설기 엮은 것과 같다. 그것이 암시하는 불완전한 개연성은 자아가 겪는 욕동과 자극이 만들어내는 일련의 기록들에 기대어 나타난다. 꿈의 텍스트에서 드러난 임의적인 개연성에 의해 그동안 끈끈하게 결합되어 있던 몸의 일부는 이미지로써 분리된다. 그러나 그것이 지닌 내러티브와 유사하게, 몸의 이미지는 그것이 겪은 일련의 기록들을 재생한다. 이는 작가의 의도에 의하면 ‘분할과 연결’이다. 극도로 확대된 표피로 우리는 그것이 감싸고 있는 손의 형태를 지각할 수 있으며, 곧게 뻗은 손가락의 뼈마디는 전신의 움직임과 겹쳐진다. 김성연의 <검은 바다>가 제시하는 몸의 이미지는 그가 임의로 구분한 몸의 두 부류가 ‘분할과 연결’을 맺는 과정, 혹은 그것과 결부된 전체의 외연을 인지하려는 그의 시도이다. 즉, 무의식의 상황을 가정하여 그것이 겪어온 일련의 기록들을 탐색하는 ‘몸의 인지법’이다.


1) 김성연은 신작을 제작하며 TDCC (The Dream Collectors Collective) 와의 협업으로, 8인의 꿈 공유자를 모집하여 자신의 꿈을 나누고, 해석을 공유하는 꿈 워크샵을 진행하였다. 참여자들은 자신의 꿈을 바탕으로 릴레이 형식의 이야기를 작성하였다.
2) 디디에 앙지외, 『피부자아』, 권정아·안석 역, 인간희극, 2008, p.3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