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윤영
JANG YUN YOUNG








GAIA, 웹 에코 게임, 2021

걸어나갈수록 불편해지는 장윤영의 Gaia_권홍은


 
  ‘감정’은 인간과 기계가 차별화되는 지점이자 인간이 기계에게 잠식될 수 없음을 증명하는 마지막 보루였다. 그러나 인공지능에게 데이터셋을 학습시키는 기술이 고도화되면서 인간의 감정을 인식하고, 식별하고, 생성할 수 있는 인공 감정 지능(Artificial Emotional Intelligence)은 선반장 위에 놓인 스피커의 형태로 일상적이지만 어마어마한 양의 데이터 더미를 소리 없이 모으고 있다. 그렇게 기계는 인간이 무심결에 뱉어낸 한숨에도 적절한 숫자를 붙여 데이터로 변환시키면서 스스로 정교해진다. 기계의 존재감을 비로소 실감하기 전까지 인간은 그 내적, 외적 과정에 사회, 문화, 정치적 이슈들이 얽혀있다는 사실을 눈치채지 못하며 인간의 죄가 곧 인공지능의 죄가 되는 가능성 또한 짐작하지 못한다. ‘우리가 우리의 도구를 만든 다음에는 우리의 도구가 우리를 만든다’는 마셜 맥루언의 경고가 더욱 의미심장하게 다가온다.

 장윤영은 끝도 없이 세밀해지는 기계가 내 머리맡에 당연한 믿음으로 자리하는 동시대 생태 환경을 관찰하며, 인간이 주체성을 가지고 일련의 기술과학적 활동을 통제하는 것 같아보이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인간이 개입할 수 있는 범위는 좁아질 수 밖에 없는 상황을 포착한다. 그리고 그 한정된 범주 안에서 인간은 때늦은 사유를 시작한다. 무엇이 누구를, 누가 무엇을 분류하는지? 누구와 무엇을 어떻게 구별할 수 있는지? 어떤 것이 실제이고 무엇이 가짜인지? 장윤영은 이러한 사유가 가능하도록 하는 인공적인 환경을 제공한다.

 장윤영이 <포킹룸(2021)>에서 선보인 ‘Can you read this person’s emotions?’는 인공지능 학습 결과로 나타난 감정 인식 데이터와 인간 스스로가 인지한 감정을 동시에 제시한다. 그 사이의 간극이나 유사점을 객관적으로 전달하고자 함은 아니다. 지극히 자연스러운 생물학적, 신경학적 작용이라고 생각되어왔던 감정이 생성되고 표현되기까지의 과정을 들여다보게끔 한다. 그런가 하면 <Play on AI(2020)>의 ‘고백’은 인간 감상자가 인공지능의 윤리적인 고해성사를 직접 듣도록 만든다.

 이렇듯 장윤영은 인간에 의해 심어진 데이터 더미가 특정한 시스템을 형성하고, 그렇게 만들어진 시스템이 또다시 연쇄적인 고리를 이뤄 예상치 못한 상황에서 인간과 다시 맞닥뜨리게 되는 상황을 조성해왔다. 이 당황스러운 마주침은 인간이 스스로에게 던지는 어떠한 형태의 질문이라도 가능하게 한다. 

 이번 <바디다운로드매뉴얼>에서 장윤영은 웹작업 'Gaia’를 통해 인간의 사유를 촉발시키는 요소들을 확장하기에 이르렀다. 웹 게임의 형식을 취하고 있는 'Gaia'는 관람자를 능동적인 사용자로 끌어들인다. 낮은 픽셀의 인간 형상을 하고 있는 게임 속 캐릭터는 철저한 제 3자, 외부인이다. 계속해서 돌아가는 저화질의 지구 이미지와 겹쳐져 이 인간이 과연 태초의 인류인지, 먼 미래의 포스트휴먼인지 사용자는 확신을 갖지 못한다. 그러나 식사, 전기 사용, 질병 치료 버튼이라는 선택지를 두고 고민하는 과정에서 작가가 오랜 기간 리서치해온 기후변화, 생태계 파괴, 팬데믹의 이슈가 문장으로 화면에 깜빡일 때마다, 사용자는 기억 없는 과거와 실체 없는 미래 대신 현재를 반추하기 시작한다. 게임 속 지구가 n번째 멸망하고 n번째 부활하고, 그에 따라 인간-캐릭터 또한 태어나고 죽기를 반복하는 사이클 속에서 축적된 리서치는 거대한 실체가 되어 인간-사용자를 압박하기에 이른다.

 Gaia에 등장하는 저화질 픽셀의 캐릭터는 미국의 문학자이자 생태문화이론가인 스테이시 엘러이모가 통찰한 ‘횡단-신체성(transcorporeality)’을 떠오르게 한다. 여기서 신체는 독립적이며 비투과적인 존재가 아니라 요소들이 서로 충돌하고 결합하고 통과하는 물질적 실체로 간주된다. 존재하는 모든 것은 신체를 넘나들고 구성하는 요소가 될 수 있다. 게임 속 인간의 형상을 한 캐릭터 역시 방사능, 분진, 오염된 먹거리, 독성물질이 축적되고 통과하는 생물학적 신체일 뿐만 아니라 산업 시스템, 권력 구조, 경제적 이권 다툼이 침투하는 물질적 실체다. 게임 내부에서 스러지고 부활하기를 반복하는 신체이자 실체는 대수롭지 않게 버튼을 클릭함으로써 발생하는 유해한 가스, 척박한 땅, 썩어버린 음식, 그리고 그 버튼을 클릭할 수 밖에 없도록 설계된 시스템, 클릭된 버튼에 의해 톱니바퀴처럼 돌아가는 사회적 체제가 맞물린 복잡한 네트워크 위에 놓여져 있는 것이다. 리서치 속 지극히 구체적인 숫자들은 게임 사용자인 내 몸 또한 격렬한 횡단의 거점이 아닌지 자꾸만 의심하게 만든다.

 빙글빙글 돌아가는 지구, 그 표면을 중단 없이 걸어나가는 픽셀 인간. 느슨해질 때마다 등장하는 오싹한 명제들. 축적되는 멸망, 탄생, 그리고 다시 멸망. 버튼을 선택하는 건 분명 사용자인 나의 몫이라고 믿어왔는데, 무수히 파괴되고 부활한 지구를 진작에 거쳐간 또다른 사용자들이 스스로도 모르는 새에 심어놓은 시스템은 돌고 돌아 현재와 맞닥뜨린다. 장윤영이 치밀하게 설계한 이 불편한 부딪힘은 인간의 총체를 의심하게 만든다. 이같은 내밀한 사유도 언제 물질화되어 다시 인간과 낯설게 마주하게 될지는 모를 일이다.



스테이시 엘러이모, <말, 살, 흙: 페미니즘과 환경정의>, 2018







The Emotions of Tears, 인공지능 기반 생성 이미지 250 x 250mm, 2021

The Emotions or Tears, 희미해지기 전에_이민영



    <The Emotions of Tears>는 인공지능 딥 러닝을 기술적 지지체로 하는 AI GAN에 의해 생성된 ‘눈물 흘리는 사람’이다. 인공지능의 발달이 ‘인간만이 할 수 있는 것’의 영역을 점차 무화 하는 방향으로 진행되어 왔기에, 인간의 고유한 행위로 여겨지던 예술의 영역에 AI가 도달하는 상황은 논의의 대상이 되어왔다. ‘감정’을 인간만의 특성으로 주목하며, 예술의 감상과 창작의 과정은 인간에게만 주어진 정신적인 차원의 것이라고 보는 관점과 인간의 감정과 정신적인 차원까지도 분석해 선보이길 반복하는 AI의 행보 사이에는 여전히 인공지능이 인간을 대체해 버리는 것이 아니냐는 오래된 우려가 남아있다. 그러나 장윤영의 작업은 인공지능이 인간을 대신할 수 있는가에 대한 가치판단이 아니다. 인간에 대한 것이다.

 작업에 사용된 AI GAN은 인간의 신경망 구조를 기계화한 인공 신경망에 의거한다. 인공 신경망은 입력층과 출력층 그리고 그사이 복수의 은닉층을 가지는데, 입력층에 데이터를 입력하면, 마치 뉴런의 구조와 같이 수많은 은닉층을 거쳐 목푯값에 가깝게 수정을 거듭하며 출력값을 산출해낸다. 이미지 생성을 위한 딥 러닝 모델은 데이터 셋에 속하는 이미지들의 특징을 학습하고 규칙을 찾아내는 훈련을 통해 결과적으로는 기존에 없는 새로운 이미지를 생성한다. AI 생성 이미지인 <The Emotions of Tears>는 눈물 흘리는 사람의 대표적인 패턴으로 여겨지는 눈과 눈물이 생략되거나 왜곡된 채로 관람자 앞에 놓인다. 인간이 아닌 기계가 만들어낸 이미지, 감정의 창구로 여겨지던 눈이 생략된 얼굴이다. 그럼에도 그 앞에서 우리는 분명 감정적인 동요를 느끼게 된다. 이는 감정의 보편적인 특징을 관찰해 이해하는 것, 감정을 인지하는 과정, 인간 그리고 감정에 대한 본원적인 질문을 끌어낸다.

 감정이란 무엇일까. 인간이 감정을 느끼고 타인의 감정을 읽어내는 것은 사회적 소통에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며 대면하는 모든 순간 자연스럽게 이뤄진다. 우리는 타인의 행동이나 표정에서 감정의 단서를 찾아내 해석하곤 한다. 감정은 다양한 표정, 제스처, 눈빛 등의 병치로 이루어진 알레고리인 것이다. 이를 독해하는 알레고리적 과정은 일상에서 어렵지 않게 행해지는데, 주로 관습적인 도상들에 의지한다. 눈빛의 온도, 미소나 웃음 또는 눈물 등이 흔히 단서가 되어준다. 그러나 장윤영의 ‘눈물 흘리는 사람’ 이미지에서 감정의 대표적인 도상들은 AI GAN에 의해 중첩되고 얼룩지거나 감춰져 그 알레고리는 분명 느슨해져 있음에도 관람자는 감정을 인지하는 알레고리적 과정을 수행하고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이는 기계를 사이에 두고 이루어지는 소통 그리고 기계를 통해 분석되는 것이 자연스럽고도 당연한 것으로 여겨지는 오늘을 떠오르게 한다.

 기계를 통해 매개되는 소통은 더는 어색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오늘날 기계를 통해 분석되고 전달되는 것은 일상, 계속해서 익숙하고 편안해지는 흐름이다. 모니터를 통해 보이는 표정과 접속 상태는 상대의 현존을 표상하는 데 딱히 부족함이 없는 듯하다. 여기에서 장윤영은 우리에게 쉽게 읽히던 감정의 알레고리만으로는 더 이상 이전과 같은 정도의 이해를 얻을 수 없을지 모름을 시사한다. 공유할 수 있던 감정의 깊이와 다양성의 정도가 위축될 수 있다는 것이다. 시간과 공간의 축을 공유하며 대면하는 인간, 그들의 감정은 관습적 도상들 외에도 수많은 요소로 이루어진 단단한 알레고리다. 코드로 분석되어 산출된 결괏값이 담아내지 못하는 것들이 분명 존재한다는 것은 아직 생생하게 떠오르는 감각이다.

 기계를 통해 분석, 전달되는 것은 계속해서 익숙해지는 흐름이다. AI가 산출해 낸 이미지가 우리에게 손쉽게 감정적 동요를 일으켰듯, 우리는 만져지는 신체 없이도 어려움 없이 서로의 현존을 인식한다. 기계가 표상해 낸 존재들에 익숙해져 현존과 감정이라는 인간의 단단하던 알레고리의 감각이 희미해져 가는 이 시점 우리에게 요구되는 것은 다른 무엇보다도 인간에 대한 이해, 만져지는 살과 공유되는 시공간에 대한 감각을 기계가 표상해낸 현존을 마주하는 일상에도 무사히 안착시키는 것이다. 몇몇 코드들로 분석된 감정, 접속 상태로 표상되는 우리의 현존이 어느새 무한하되 한없이 얕은 것이 되기 이전에 그것에 대한 더 깊은 이해가 요구된다는 것이다.